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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코딩을 배웁시다?

며칠 전, ‘decodr’ 편집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충고를 들었다. 요약하면, 요즘 사람들은 그 내용이 훌륭하든 말든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자체를 그냥 막 싫어하니까 무조건, 잔소리 하지 마라. 크게 공감했다. 요즘 시대를 대표하는 문장 딱 하나만 고르라면 “왜 가르치려고 들어?” 아닌가 싶을 정도니까. 그래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안 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과도 코딩을 배우라!”

 
이 말은 좀, 뭣하다. 안 하기로 했던 잔소리가 막 터져 나온다. 주장에 힘 싣느라 곁들이는 ‘인구론(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이니 ‘문송(문과라 죄송합니다)’이니 하는 유행어도 그 현실 참 딱하긴 하나 역시 좀 뭣하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학생이고 깡패는 싸움을 해야 깡패고, 문과는 문과를 해야 문관데. 코딩 공부가 워낙 뜨거운 세계적 추세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비겁한 함정도 느껴진다. 말하자면, 대부분 사회적 하층을 향한 메시지다. 급한 인력 일단 급조하고 보자는 직업교육기관 광고 같달까.
 
이걸 사회적 문제로 보는 까닭은, 하층 말고 상층을 향한 메시지는 완전히 다른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쪽의 대표적 잡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AI 그리고 데이터가 중심인 세상에서 인문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라며 인문학이 어째서 디지털 세계를 지배할 것인지에 대해 장황한 주장을 펼친다. 그 외에도 소위 ‘오피니언 리더’를 대상으로 한다는 메시지들은 내용이 얼추 비슷하다. 대놓고 “이공계 기술은 입사할 때 조금 이로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휘발해 완전히 사라진다”고도 말하고, 최근 코딩 열풍 과도함을 경고하며 인문학 그리고 예술의 가치에 집중할 것을 조언한다.
 
아니 그럼 “코딩을 하라!” 이건 잠깐 쓰다 버릴 코더가 지금 당장은 필요하다는 뜻일 뿐일까. 이럴 때마다 늘 등장하는 전가의 보도 ‘통합’이니 ‘통섭’이니 그런 괜한 말은 하지 말자. 서로 아귀 잘 안 맞는 말들 어떻게든 봉합하려는 시도 같긴 한데, 단 한 명이라도 그 뜻이 뭔지 제대로 말해 준 자가 있기나 했나, 난 모르겠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

 
기술과 인문학. 딴 나라의 사장님 스티브 잡스가 이 나라 거의 모든 경제적 사회적 담론의 쎈타를 담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 요란했던 인문학 열풍도 되돌아보면 그가 아이패드를 내놓으며 “애플은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있다”고 말했던 날 이후 아닌가 싶다. “그래! 인문학이지!” 호들갑도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이젠 “인문학 전공자도 코딩을 배우라!” 호들갑이니, 아니 뭘 어쩌라고,,
 

 
어쩌면 ‘인문학’으로 대충 번역하는, 그래서 뜻이 좀 애매해졌다 싶은 ‘Liberal Arts(교양?)’의 역사에 작금의 코딩 강요 풍습의 메커니즘이 들어 있다 싶기도 하다. 교양이라는 과의 발생은 과거 로마 노예 시스템에 기반한다. 노동 따위는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므로 ‘자유(Liberal)’인은 ‘교양(Liberal Arts)’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서류 처리 등의 일을 시키기 위해 일부 노예에게 약간의 지식을 가르치기도 했으니, 그 간택을 두고 노예들끼리 경쟁하던 아픈 역사에서 요즘 세상의 이것저것 막 배우기 열풍을 떠올린다면, 과한가.
 
아무튼, 문과생들의 코딩 배우기 열기가 뜨겁다는 기사를 흔히 본다. 기술적 소양과 인문적 소양을 고루 갖춘 이른바 ‘융합형 인재’를 향한 노력일 것이다. 뭐, 멋진 일이다. 프로그래밍은 배울 만한 가치 철철 넘치는 일이니 일단 아주 반갑다. 하지만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문송한 마음에 일단 붙잡고 보는 지푸라기가 지금은 코딩인가 보다 싶기도 하니, 딱하다. 문과생이 공대 부전공 해서 프로그래머로 취업한 경우도 있다고는 하던데 직접 본 적은 없고, 이미 취업에 성공한 문과생이 취업 후에 (강제로) 사내교육 통해 코딩을 배운다는 말은 종종 듣긴 한다. 그렇게 아주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된 경우는 한 번도 본 적 없다.
 
 

전공에 대한 프로그래밍적 이해

 
어쩌다 프로그래머들 틈에 슬쩍 끼어 살다 보니 덩달아 이쪽 전문가처럼 보이는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곤 한다. 간절하게, “코딩을 배우는 게 좋을까요?” 그럼 일단 난 그런 대답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사양하는데 그래도 자꾸 물으면,
 
“코딩이 아니라 자기 전공 데이터에 대한 프로그래밍적 이해 수준을 높이세요.”
 
답한다. 나름 적당한 답이다 싶은 건, 별 뜻 없이 “코딩 배워!” 막 떠드는 아저씨들 말고 보다 진지한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하더라. 코딩 학습 선동 위험을 지적하며 진짜 필요한 기술의 정체를 파악하라고 조언한다. 이를테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부족해서 몸값이 치솟고 있다!” 등 기사, 근거가 있는 걸까. 그 분야 진짜 전문가들은 오히려 ‘데이터 사이언스’란 말이 기존 ‘통계학’과 뭐가 어떻게 다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불평하며, 명확한 정의 없이 단지 ‘비즈니스 분석’ 정도의 의미로 추가된 대학원 과정 이름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물론 이력서에 왠지 멋져 보이는 한 줄이 추가되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결국 또 하나의 마케팅 버즈워드의 유행일 뿐이란 거다.
 
물론 이런 것들은 인생이 걸린 문제까진 아니다. 인생은 뜻밖에 꽤 기니까. 그리고 프로그래밍은 세상 대부분의 기술들이 그러하듯 배워서 나쁠 것 1도 없는 아주 훌륭한 기술이다. 그러니 단지 그렇잖아도 불안한 사람들 주변에서 괜히 호들갑 떨진 말자는 거다.
 
앞으로 잔소리 안 하기로 했지만 이 잔소리만은 꼭 해야겠다. 자기는 이미 밥벌이 하고 있다고, 취준생들에게 이걸 해! 저걸 해! 떠드는 아저씨들이 참 많다. 긴 말 쓸데없고, 이모저모 비교해 보니 요즘것들이 옛날것들보다 어떤 기준으로 보든 훨씬 더 낫더라. 그러니까 우리 옛날것들은, 쓸데없는 말 좀 하지 말자.
 
 

전공에 대한 프로그래밍적 이해에 따른 언어

 
자기 전공 데이터에 대한 프로그래밍적 이해 수준을 높이라는 대답이 영 애매한지 또 묻는다. “그럼 어떤 코딩을 배워야 할까요?” 아주 흔한 질문이라 질문 문장 그대로 검색해 봐도 ‘올해의 인기 언어’ 등의 글이 쪼르르 뜨지만, 대답은 마찬가지,
 
“자기 전공 데이터에 대한 프로그래밍적 이해에 관련된 언어를 배우는 게 좋겠죠.”
 
이를테면, 통계학 관련 전공이라면 당연히 따라붙는 ‘R’ 등의 기본도구가 있을 것이고 그 도구를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쓰기 위한 ‘Python’ 등의 보조도구도 있을 것이다. 언어 전공자라면 문자열 처리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관련된 일이 일단 떠오르는데, 그 또한 주변에서 조언이랍시고 아무렇게나 막 던질 일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다루는 데이터의 성질에 따라 선택하면 될 일이고, 그런 선택에 드는 고민 자체가 바로 ‘전공’의 심화 아닌가 싶다. 남들 말 듣고 유명하고 요즘 인기 많다는 언어 골라 일단 학원 등록부터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진, 그리고 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