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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집 의전실장

전에 투덜댔듯, 점심시간 여의도, 여의도뿐 아니라 사무실 밀집지역에서 밥 먹기를 아주 싫어한다. 나는 손님이 아니라 “4인석이니까 2명은 기다리세요!” 틀에 맞추는 테트리스 조각일 뿐이다. 기다리다 겨우 자리에 앉아도 원반던지기 경기 하듯 접시 휙휙 던지면 혹시 김치국물 튈까 봐 무섭고, 접시 치우기 귀찮다고 발로 막 밟아 우그러진 양철 사각 쟁반을 식탁 위에 턱 얹은 채 그대로 먹으라 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대접인지, 우리는 밥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 차례차례 쪼르르 지나가는 물건일 뿐이다. 게다가 그딴 취급에 비해 밥값은 너무 비싸고.

다행히, 모두 다 그런 건 아니다.

점심시간에 일이 있어 일찍 점심 먹으러 갔다. 마음 급하니 순대국이나 후루룩 마시고 오자며 순대국집. 점심시간 전쟁을 앞두고 한창 테이블 세팅 중이다. 구석 자리에 앉아 양파 씹으며 순대국 기다리며 종업원들 대화를 듣는다. 워낙 목소리가 커서 듣고 싶지 않아도 안 듣고 싶어도 들을 수밖에 없다. 마침 신입 들어왔는지 고참이 교육 중인가 보다. 뒤 졸졸 따라다니라 시키고 식탁 위에 반찬 그릇을 놓으며 이것저것 잔소리를 한다. 근데, 아, 섬세하시다..

“쟁반은 테이블 가운데다 쨍강 소리 나게 놓지 마시고, 테이블 끝에서 테이블과 쟁반 좌우 각 맞춰 슬쩍 놓고 앞으로 조용히 슥 밉니다. 각 안 맞으면 보기 좋지 않고 각 안 맞은 쪽 손님이 불편합니다. 쟁반 바닥은 깨끗해야지 더러우면 밥맛 떨어집니다. 우리집 김치 양파 고추 접시는 길쭉하게 생겼는데, 탁자 길이 방향으로 수평 되게 놓습니다. 각 삐뚤어지면 성의 없어 보입니다. 한 가운데! 한쪽으로 몰리면 반대쪽 손님 기분 안 좋습니다. 그게 뭐라고 싶어도 원래 사람은 그런 사소한 걸로도 기분 안 좋아지고 그럽니다. 반찬은 네 명 모두 다 손 닿는 곳, 자리에서 좀 멀더라도 의자서 일어나진 않아도 되는 곳에 놓습니다. 멀면 한 사라 더 깔아야 합니다. 된장은 양파 고추 찍어 먹는 거니까 가운데가 아니라 손님 앞에 놔야지 손님이 드시다 안 흘립니다. 밥은 국 왼쪽에 놓습니다. 국 아직 안 나왔는데 밥만 먼저 놓고 가면 안 됩니다. 손님이 밥만 보고 오래 앉아 있으면 국이 왜 이리 늦게 나오나 짜증이 납니다. 국은 뚝배기 아래 받침을 양손으로 잡고 손님 앞에 놓습니다. 손님 아무리 많아도 탁자 아무데나 띡 띡 놓고 가면 안 됩니다. 음식은 정성! 정성이 있어야! 손님 아무리 많아도 꼭, 정성!”

아, 감동.. 이 굉장한 아줌마는 당연히 청와대 의전실장을 맡으셔야 할 것 같은데 왜 여의도 순대국집에서 잔소리 듣기 싫은 티 엄청 내는 신입 교육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한동안 매일 그 순대국집에서 순대국만 먹었다. 사실 그리 맛있는 순대국은 아니다. 여의도에서는 탑 클래스지만, 순대국 팬 보기에 최상급은 아니다. 흔한, 그러니까 살짝 라면맛 순대국이다. 그러나 순대국집 의전실장님 면전에서 맛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음식은 정성! 정성이 있어야!”

하지만,

다음날 또 순대국 먹으러 갔다가 어제 교육 받던 신입이 순대국집 주인(은 주방에 있고 아마도 딸?)에게 불평하는 걸 들었다.

“저도 이 일 꽤 오래 했어요. 손님 어떻게 받는지도 잘 알아요. 근데 이건 좀 심하잖아요.”

그 바쁜 점심전쟁 와중에도 따따부따 불평 다 들어 주고 있는 것부터 굉장한데,

“심성 나쁜 분은 아니잖아요. 제가 잘 말씀 드려 볼께요. 누가 그러더라고 말하진 않구요.”

아, 이 집, 너무 좋아..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67 신송빌딩 지하 1층 ‘백암왕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