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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칼국수, 진지함에 대하여

어떤 문제가 있다. 절대 해결 못할 듯싶은 어려운 난제다. 여의도 같은 사무실 밀집 지역의 밥집 문화가 그러하다. 도대체 이건 뭐,, 말문이 막힐 정도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불만스러운데, 해결 방법은 아예 없어 보이는 총체적 난국이다. 그런데,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서로 진지하게 대화할 기회가 없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밥집 주인들도 문제가 뭔지 아예 모르는 거고. 밥 다 먹고 계산할 때 주인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곤 한다. 점심시간 여의도 밥집은 그야말로 전쟁터라 그런 풍습마저 거의 없지만.

“맛있게 드셨어요?” 가볍게 묻는다.
“네, 잘 먹었습니다.” 가볍게 답한다.

가벼운 인사다. 질문이 아니니 대답도 아니고, 아주 잠깐 사람 사는 기분 드는 것 말곤 달라질 건 없다. 물론 사람 사는 기분, 그것도 아주 중요하긴 하다만, 어쨌든 달라질 건 없다.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곰탕칼국수 집에 갔다. 해당 업계는 ‘곰국수’라 부르는데, 그리 말하면 누가 꼭 묻더라고. “곰국수가 뭐야?” 그래서 그냥 ‘곰탕칼국수’라 말한다. 가게 앞에 “신장개업! 곰국수 8000원 5000원!”이라고 아주 크게 써서 붙였다. 아직 알려지지 않아 그런지 손님이 한 명도 없다. 먹어 보니 맛은 뭐, 그럭저럭, 나쁘진 않다.

밥값 내는데 주인이 묻는다.

“어떠셨어요?”

진지한 태도다. 장사 이제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땠냐고, 진지하게 묻는 겁니까?”
“네!”

그래, 진지하게 대답했다. 진지하게 물으면, 진지하게 답하는 게 예의니까.

“우선, 곰탕 전문점이라는 느낌이 약합니다. 국물이 짠데, 간 싱겁게 하시고 테이블에 소금통을 놓으세요. 곰탕처럼 겉보기에 간단해 보이는 음식일수록 손님은 과정에 참여해 자기가 직접 완성한다는 기분이 들어야 만족합니다. 유명한 곰탕집들이 간 못 맞춰서 테이블에다 소금통 두는 거 아닙니다. 반찬 중에 양배추 사라다는 아예 빼시든지 아님 마요네즈 줄이세요. 분식집 같습니다. 그게 어느 곰국수집 반찬으로 유명한지는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건 그 집 반찬이라서 유명한 겁니다. 괜히 따라하지 마세요. 아이덴티티 급 떨어져요. 칼국수 말고 만두도 파시니까 곰탕만둣국도 추가하세요. 국수와 만두 메뉴 두 가지로는 부족합니다. 손님들이 난 뭐! 난 뭐! 떠드는 선택의 재미를 뺏지 마세요. 특히 여의도 같은 동네에서는. 단일 메뉴 딱 하나로 이미 유명한 집이 아니니까요. 그릇은 던져도 안 깨지는 그릇이 좋습니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밥공장이냐고 투덜대면서도 정말 공장 기계처럼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서 안심하기도 합니다. 면에 비해 국물이 많으니까 줄이세요. 사람들은 국물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고 면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래야지 국물이 이 식당의 핵심 가치가 됩니다. 평양냉면집은 육수가 공짜 리필인데 쌀국수집은 면이 공짜 리필인 까닭은 냉면은 면이 핵심이고 쌀국수는 육수가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다대기는 간장에다가 까나리액젓 섞어 만드셨는데, 너무 짜요. 다대기는 대개 별 생각 없이 탁 털어 넣는데 매운맛 짠맛 막 섞이면 싫거든요. 소금 넣어 간 맞춘 뒤라면 이거 아주 난감해져요. 그리고 개업하신 직후라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식탁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며 빤히 쳐다보고 그러지 마세요. 불편합니다. 그리고, 미원 줄이세요. 너무 티 납니다. 다들 넣지만 티 안 내는 게 실력입니다. 마지막으로, 원래 8천원인데 1주일 동안 5천원, 이런 이벤트는 좋지 않습니다. 1주일 지나 먹으러 오면 5천원짜리를 왜 8천원에 팔아? 그리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여의도 밥값 비싸다고 투덜댈 겁니다. 이기심엔 논리 같은 거 없어요. 차라리 개업 기념 오늘 공짜! 이렇게 개업 1주일 전에 붙여 두는 게 낫습니다. 그럼, 잘 먹었습니다.”

“네……”

주인 표정은 충분히 진지해졌다. 뭐든 충분해야.

보름쯤 지나 다시 가 보니, 어울리지 않던 양배추 사라다는 빠지고 메뉴 몇 개 늘었다. 해맑은 사기그릇이 여전히 찜찜하지만 전쟁터에서 이런 약해빠진 그릇은 곧 깨져 나가니 튼튼한 밥공장 그릇으로 대체될 것이다. 국물과 면의 비율은 적당하고 식탁 위에 소금통이 있다. 소금 넣어 간 맞추고 짜지 않은 다대기 약간 풀어 칼칼하니 맛있게 잘 먹었다. 보라. 서로 진지하게 대화하면,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