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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의 본질

 
업의 본질
 

예전에 어느 회장님의 ‘업의 본질’ 설이 잠깐 유행했다. 비록 물려받은 유산이지만 고도의 통찰과 직관으로 세계적 대기업 이끌 만한 역량 충분히 갖추신 분이라는 걸 알리려는 홍보실의 노력이었을텐데, 몇몇 이야기들은 꽤 그럴싸했다. 이를테면,

회장이 호텔 사장을 불러 묻는다. “호텔 사업의 본질은 무엇이오?”
사장은 답한다. “서비스업입니다.”
회장은 고개를 가로젓고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시오.”
사장은 해외 유명 호텔들을 둘러보고 업의 본질을 고민하고 돌아와,
회장에게 말한다. “호텔 사업은 장치산업이요 부동산업입니다.”
회장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잘 보셨소.”
그리고 장치산업이자 부동산업으로서의 호텔의 미래 전략을 논의했다..

..는 식이다. 이 구성의 장점은 어느 분야에든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석유화약 사업의 본질은 무엇이오?”
“이윤의 극대화 그리고 시장 점유율 확대입니다.”
“아니,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시오.”
(세계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돌아와.. 등 소설적 설정이 붙고)
“인력 훈련입니다.”
“잘 보셨소.”

일의 진짜 정체를 정확히 정의해야 미래가 그려지는데 이는 입체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업의 본질’ 설의 요체다. 보험 사업은 사람을 모으는 흥행업, 증권 사업은 대화를 잘하는 상담업, 가전 사업은 조립과 양산 사업 식으로 여러 변종들이 있었고.

 
고깃집의 본질
 

어느날 고깃집에서 고기 굽다 말고 문득, 고깃집 사업의 본질이 뭘까? 요리? 글쎄.. 생각해 보면 이거, 아주 이상한 일 아닌가. 사전을 봐도,

“요리 : 조리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듦. 또는 그 음식. 주로 가열한 것을 이른다.”

그럼 고기를 굽는 일이 요리일텐데, 내가 왜 고기를 굽지? 고깃집의 요리사는, 난가?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같잖을 정도로 비싼 고기 굽는 일이 영 피곤하게 느껴지고 집게와 가위 쥐는 손가락도 막 아픈 것 같고 그래서 “뭐든 불에 구워 먹으면 맛있지!” 그렇게나 즐겨 찾던 고깃집을 좀 피하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 먹었을까. 언제부터 그 뜨거운 불판 앞에 앉아 뻘뻘 땀 흘리며 열심히 구워 먹고 몸과 옷에 민망할 정도로 밴 냄새를 부끄러워 하며 혹은 자랑스러워 하며 지하철을 타게 됐을까. 오래된 고깃집들의 역사를 봐도 이는 그리 오래된 풍습은 아닌 듯하다. “육이오사변 터지고 다들 힘들게 살 때 드럼통 엎고 그 위에다 고기 구워 먹는 식당 차렸는데 그 장사가 마침 잘되는 바람에 지금도 다들 드럼통 옆에 서서 먹지.” 그러니 오직 효율 만세! 산업화 속도전의 부산물이지 우리나라 요식업 전통은 아닌 것.

집게와 가위를 뺏자는 건 아니다. 남들보다 고기를 잘 굽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굉장하다. 그 일을 못하게 한다면 엄청 시무룩해질텐데 미안해서 어찌 뺏겠어,, 하지만 미국인들의 바베큐 자부심도 굉장하다. 글로벌 불판부심. 하지만 미국 바베큐는 가정의 문화다. 바베큐를 파는 식당에선 손님이 직접 굽지 않고 주방에서 구워서 내놓는다. 왜? 굽는 것이 요리니까. 그게 아니라면 고깃집 주방장의 자부심은 어디서 찾겠나. (궁금해서 옆자리 안나씨에게 물어 보니 핀란드에서는 식당 홀에 가열기구를 두는 것 자체가 화재 위험 등의 이유로 아예 불법이라고 한다.)

고깃집 업의 본질은 ‘유통업’이다. 좋은 고기 그리고 채소 등 식재료를 경쟁자들보다 잘 구하는 일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날그날의 품질보다 꾸준한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는 점도 유통업으로서의 성질이다. 아니라면 그건 식도락이 아닌 식도박이 되니 손님이 떨어져 나간다. 그러니 “고기 실은 차가 서울 오면 가장 먼저 우리 식당에다 가장 좋은 고기 내리고 나서 다른 고깃집으로 간다”는 말이 유명한 고깃집 사장들의 흔한 자랑이다. 그러니 웬만해선 껴들지도 못하는 살벌한 고기 유통업에 개입한 조직폭력배가 직접 고깃집을 차리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 탈세 등으로 경찰에 붙잡히면 공짜 고기 얻어먹던 연예인들이 “그는 비록 깡패지만 문화를 이해하는 깡패” 식의 탄원서를 쓰기도 하고. 그리고 외식업 프랜차이즈 사업의 본질 또한 유통업이니, 전에 비해 고깃집 프랜차이즈가 점점 늘고 있다. 업의 본질에 따른 변화다.

반면, 주방에서 구워 주는 고깃집도 있긴 하다. 그런 집의 요리사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굽는 게 요리죠. 얼마나 맛있게 잘 굽느냐가 기술인데, 그걸 손님에게 맡기면 어쩌자는 겁니까?” 타당하다. 그 중요한 일을 손님에게 맡기면 어쩌자는 건가. 손님의 실수로 잘못 조리되어 망친 고기가 모두 손님 탓이라면 이거 너무 무책임한 태도 아닌가. 고기값이 황당할 정도로 비싼 나라에서. 하지만 이는 업의 본질이 완전히 다른 경우다.

 
회사원, 업의 본질
 

왜 고깃집 이야기를 이리 길게 하냐면, 일의 진짜 정체를 정확히 정의해야 미래가 그려지고 이는 입체적 사고를 통해 스스로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어쨌든 옳은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회사원 업의 본질은 뭘까? 이거, 꽤 어렵다. 그래서 대개들 별 고민 없이 살던 버릇대로 산다. 뭐든 찾으면 다 나오는 구글링 시절엔 통하지도 않는 정보 기억력이나 종이 기반 자료의 축적량을 회사원으로서의 우수성이라며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 예로서 당대 최고 대우를 받던 칼럼니스트 이규태씨의 어마무시한 작업실은 문화사적으로 보존해 마땅하지만, ‘문화재’, 요즘 세상에서 통할 방법은 아니다. 그렇다고 ‘검색 능력’ 등 흔한 말로는 어째 좀 부족하다 싶고.

업의 본질은 시절에 따라 변한다. 어떤 업이든 업의 본질을 제대로 깨달아야 그 성공이라는 것을 노려 볼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거 참 어려운 문제다. 회사원, 업의 본질은 뭘까. 팀장 업의 본질은, 그리고 팀원 업의 본질은..

앞으로 이 페이지를 통해 계속 생각해 볼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