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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떠들지 말자

좁은 땅에 여럿이 살려니 엘리베이터란 걸 싫어도 탈 수밖에 없다. 숨막히고 답답해 가만히 있어도 고역인데 그 좁은 데서 막 떠드는 소리에 영혼까지 휘청거릴 지경이다. 대화 내용도 참 다양해 수십 층 건물에 든 그 많은 회사들 요즘 형편을 대충 다 알고 지낸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시끄러운 한 패거리 있어,

개중 대장인 듯싶은 자가 먼저 운을 뗀다. “무슨, 미국 회사 코스프레냐?” 얼씨구나 싶었는지 졸개들이 와글와글 화답한다. “실리콘밸리인 줄?” “구글인 줄?” “그러게 돈 쓰고 욕 먹고.” 그리고 꺄하하 웃는다. 고층에 사는 게 죄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보니, 그 회사에서 뭔가 새 정책을 발표했는데 그게 자기들 보기에 우습고 한심해 보였나 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어느 회사에서나 뜬금없는 정책은 갑툭튀 수시로 나타나고 곧 냉소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뒷담화는 소심한 월급쟁이들 그나마 사는 재미다. 근데 여긴 안주 삼아 회사 씹고 상관 씹는 재미로 술 마시는 퇴근길 술집이 아니라, 아무나 다 타는 엘리베이터잖아,,

 

“행복하자”

 

먼저, 뭐가 그리도 불만이라면 왜 계속 출근하는 걸까? 행복하지 못하게.

옛날엔 집단을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단순하게 분류했다. 속한 집단은 내집단, 속하지 않은 집단은 외집단. 누구든 어떤 집단에 속해 있으면 그 집단에 대해 소속감과 충성심을 저절로 갖게 된다는 전제로 성립하는 분류다. 정말 그리 된다면 아주 아름답겠다만, 소속감 1도 없이 그저 속해 있기만 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고전적 분류도 여전히 유효하다, 또는 유효하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높으신 분들은 그렇게 당연히 발생하는 충성심을 바란다. “저 사람은 능력은 뛰어나지만 충성심이 의심스러우니까, 이 사람!” 식으로 인재 판단의 근거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충성심은 역량에 반비례하고 회사 형편 어려워지면 역량 즉 구직 기회가 많은 순서로 회사를 떠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순전히 자의적으로 판단한 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려 드는 태도는 큰 잘못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런 믿음 또는 스스로 믿는 척하는 연출이 주는 효과가 확실히 있긴 하다. 그렇게 하면 회사 전체 분위기가 집단주의적으로 흐르게 되는데 그게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적절한 “으쌰으쌰!”는 긍정할 만하다.

이어서, 소속감 문제를 해설하기 위해 등장한 분류가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이다. 누가 어떤 집단에 속해 있으면 소속집단이고, 그와 별개로 자기 생각이나 행동을 결정하는 데 기준으로 삼는 집단이 준거집단. 그러니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은 다를 수 있다.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이 일치할수록 그 개인은 행복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딱하게도 현대사회에서는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은 점차 분리되는 경향이 강하다. 왜냐면,

사회가 점점 복잡해져 가치 체계도 점차 복잡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수의 집단과 관계를 맺어야만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가치 판단에 혼란이 생겨나고, 그런 혼란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소속 여부와 상관 없이 자기 눈에 안정적으로 보이는 집단에 의지하는 의존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신분제도 등 집단 간 이동을 막는 제약이 더는 존재하지 않고, 또는 존재하지 않는 걸로 되어 있고,, 계층을 초월하는 자유가 인정되니, 실제 자기가 속한 집단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집단에 소속감을 갖고 판단의 기준을 구하려 든다. 준거집단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기준이기도 하니, 준거집단의 수준에 따라 현재 환경에 대한 만족 또는 불만 정도가 결정된다.

소속집단이 준거집단과 일치하는 경우, 그게 신분 상승의 포기든 뭐든, 어쨌든 기분은 좋다. 만약 회사라면 소속감과 충성심 갖고 열심히 일하겠지.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이 다르면 대체로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고, 그 사이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불행해진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리 떠들어댈 정도로 거리가 멀다면, 그 사람은 정말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뒷담화 대장과 졸개들의 준거집단은 아마도 이상과 현실이 대체로 일치하는 실리콘밸리의 어느 아름다운 회사일텐데, 그 아름다움은 아마 그 회사 홍보 팀이 홍보 일을 열심히 한 결과일 것이다. 그냥 막 아름다운 회사는 단언컨대, 없다. 그러니 저들이 어느 회사로 옮기든 그 회사 엘리베이터는 시끄러울 것이다.

‘나는 여기 있어 주는 거야’ 쿨한 태도는 상당히 아름답다. 다만, 때와 장소는 좀 가리자.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이 다르더라도 준거집단으로 옮겨 가려는 노력이 구체적이라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열심히 노력해 소위 스펙이란 걸 잔뜩 쌓겠지. 다만 그 노력의 성공 확률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사회가 그저 안타까울 뿐.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막 떠드는 버릇은 커리어 관리에 결정적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고, 엘리베이터말은 회장님이 듣는다?

 

“아프지 말고”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막 말하는 버릇은 위험하다. 자신에게도, 동료에게도.

전에 어느 ‘회장님’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학교라곤 초등학교 딱 3년 다니다 그만두고 공장에 들어가 오직 열정만으로 큰 부자가 된 사람이다. 요즘은 그 뜻이 상당히 퇴색했지만 그땐 꽤 잘 통했던 미덕, 열정. 보고 있으면 절로 존경심이 샘솟는 그 뜨거운 삶에 늘 감탄하곤 했다. 최근 그쪽에서 편법승계니 일감몰아주기니 좀 추접스러운 소식들이 들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겐 여전히 존경스러운 분이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다 멈추더니 회장이 제작하는 온라인 게임 프로젝트의 총괄 PD가 탔다. 요즘은 게임 만드는 데 돈이 워낙 많이 드니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시엔 꽤 큰 돈이었던 100억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고, 제작 일정 말기였다. PD는 딴 사람도 아닌 무려 회장님께서 계시다는 걸 모른 채 동승한 팀장들에게 떠들길, “이거 만들어 봐야, 되겠어? 망하는 거지.” 회장님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끝내버렸다. 졸지에 영문도 모른 채 일터가 사라져버린 직원들은 패닉에 빠졌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며 언론도 요란했지만, 그냥 그렇게 끝났다. 여러 사람 밥벌이가 걸린 일인데 꼭 그랬어야 했을까, 의문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뭐, 대충은 이해된다. “이거 만들어 봐야, 되겠어? 망하는 거지.” 일개 작업자도 아닌 총괄 PD가 그렇게 말하면, 그건 이미 망한 거다. 울면서 후회해도.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편이 낭비를 막는 방법이다. 10억이 들었든 100억이 들었든. 망할 게 뻔한 일을 왜 하겠어.

아니 위험이고 뭐고, 공공장소서 왜 그리 떠들어? 유치원 교육 문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