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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스플레인 주의보

평냉부심. 작년부터의 유행어 ‘면스플레인’의 계절이 왔다. 올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지로 끌려간 냉면집에서 냉면 어르신들의 끝없는 가르침에 시달릴까. 스스로 냉면 애호가로서도 그저 딱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대표적 면스플레인 레퍼토리를 미리 정리해 둔다. 자, 마음의 준비를 해 두자. 그들이 온다.

 

“어허, 평양냉면집에서 비빔냉면을 찾으면 어째!”

언제부턴가 상식처럼 되어버린 ‘물냉은 평양, 비냉은 함흥’ 등식에 따른 분노일 듯싶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냉면이라는 음식의 원조인 북한에서도 ‘냉면’은 “평양랭면”뿐이고 그건 물냉면이니까. 하지만 평양에도 비빔냉면은 있고, 단지 ‘비빔국수’로 불릴 뿐이다. 함흥에서도 물냉면은 ‘농마(녹말)국수’ 비빔냉면은 ‘회국수’로 불릴 뿐, 물냉 비냉 다 있다. 원래 얹는 회를 얹니 마니 회냉/비냉 나눠서 쩨쩨하게 몇 푼 더 받고 그러진 않는다. 그러니 “평양냉면집에서 비빔냉면을 왜 먹어!” 외침은 완전 근거 없는 말은 아니지만, 근거 대신에 예의가 없는 것. 혼자 물냉면 조용히 먹으면 될 일이다. 그러다가 혹시 메뉴판에 ‘냉면’ ‘비빔면’이라고 써놓은 냉면집 만나면 그저 반가워 하면 될 일이고. 나도 그렇다. ‘그치, 냉면은 그냥 냉면일 뿐, 비빔면은 냉면 아니지’ 왠지 괜히 반갑더라구.

 

“전분을 왜 먹어? 냉면은 순수 메밀!”

법적으로 이것은 냉면이다/아니다 나누는 기준은 따로 없지만 그나마 공식이라 할 만한 레시피를 따지자면, 고급 냉면집 기준으로 전분:메밀 함량은 1:3 비율이 정설이고, 철에 따라 비율 조금씩 달라지지만 메밀이 아니라 전분을 더 넣는다. 흔히 ‘순면’이라는 이름으로 파는 100% 메밀면은 손님이 찾으니까 파는 건데, 이는 전통 제조법과는 거리가 멀다. 전통, 그러니까 조선시대 냉면엔 메밀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게 들어갔다. 한국에서 메밀은 식재료로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기 때문인데, 반면 메밀을 보다 고급스럽게 다뤘던 일본의 메밀국수 ‘소바’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냉면 레시피가 만들어진 것. “소바는 순수 메밀!” 이건 옳다. 전통적으로도 추구할 만한 가치다. 냉면은? 글쎄, 이 또한 취향 문제이긴 하다.

 

“냉면집 1위는 여기! 2위는 여기!”

아, 이 유치함은 대응할 가치가 없,, 깨끗이 무시하자.

 

“냉면은 가위로 자르는 거 아냐!”

자르든 말든, 남이사,, 역시 상식처럼 되어버린 “냉면 제대로 먹으려면 한 젓가락 삼켰을 때 면의 1/3은 위에 1/3은 입에 1/3은 그릇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 때문인 듯한데, 이건 냉면의 정석 같은 게 아니라 어느 냉면집 사장의 발언일 뿐이다. 평양냉면처럼 면에 메밀 함량 높으면 툭툭 잘 끊어져서 따로 자를 필요 없긴 하나, 그 또한 먹는 사람의 자유다. 괜한 참견은 반대로 “잘라줘?” 묻지도 않고 남의 그릇에 가위 푹 담그는 짓과 같은 무례일 뿐. 하지만 전분(이면 차라리 다행이다,,) 함량이 높아서 질긴 ‘고기집 냉면’은 덜 씹은 채로 목에 걸리면 아주 위험하므로 자르는 게 안전하긴 하다. 물론 꼭꼭 씹어 먹으면 괜찮다. 그러나, 안 씹히는 면도 있다,,

 

“너희들은 여름에만 냉면 찾지만, 냉면은 겨울이지!”

옛날엔 아주 귀했던 얼음은 빼고 보더라도 메밀은 겨울이 제철이고 냉면이란 게 온도조절장치 따위 없는 과격한 난방장치인 온돌의 뜨거움 식히려 먹던 별식이라, 겨울철 음식 맞다. 하지만 요즘엔 거의 무의미해진 말 아닌가. 겨울에 냉면집이 한산해서 속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긴 하다.

 

“고기집 냉면은 조미료빨!”

사실이기도, 아니기도. 요식업계 역사상 실로 혁명적 사건이었던 1909년 일본의 MSG 조미료 ‘아지노모토(味の素)’의 발명은 현대식 냉면의 발전 그리고 변형에도 크나큰 영향을 미쳤으니, 일제 강점기 시절에야 비로소 상업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던 냉면은 애초에 ‘조미료빨’이었다. 그러니 어르신들이 종종 “아, 그 시절 냉면의 맛~” 그러면 그건 매우 높은 확률로 조미료맛이다. 그러다 고급화 차별화 전략에 따라 오히려 조미료 함량을 대폭 줄인 것이 오늘날 ‘냉면집 냉면’. 따라서 냉면집 냉면과 ‘고기집 냉면’을 이름만 비슷할 뿐 아예 다른 음식으로 볼 필요가 있는데, 공장에서 육수 사서 만드는 고기집 냉면은 조미료빨 정도가 아니라 그냥 조미료물이다. 물에 조미료, 설탕, 식초 등 섞어서 만드는데, 육수는 한 방울도 안 들어간다. 물론 모든 고기집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참 사악한 단어인) “일부” 고기집.

 

“식초 겨자 뿌리면 냉면 아냐!”

그대의 냉면이 아닐 뿐, 내 냉면이다. 애초에 식초와 겨자는 각자의 취향이니, 해당 업계 전문가들 그러니까 유수의 냉면집 주인들도 “일단 먹어 보고 뿌리고 싶으면 뿌리면 되지 뭔 그런 걸 따지고 그래?” 그런다. 평양냉면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고기집 냉면 따위와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지고지순한 평냉만의 순수성을 널리 알리고픈 마음일텐데 뭐, 아름다운 마음이다. 정말 처참한 고기집 냉면이라면 식초와 겨자는 그렇게 해서라도 눈 딱 감고 꿀꺽 삼키기 위한 일종의 현실 도피 도구니까. 그러니 결국 이 모든 게, 전혀 다른 음식인데 똑같은 이름 ‘냉면’이라 부르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통적으로는 평양 말고 진주냉면이 냉면이지!”

이건 상당히 마이너 주장인데 마이너다 보니 괜히 과격해서,, 딱 잘라 말해, 진주냉면은 제대로 계승되어온 레시피가 아니기 때문에 평양냉면에 비해 전통성이 떨어진다. 마침 그 동네서 나고 자라 그 맛을 잘 아는데, 어릴적 먹던 맛과 지금 먹는 맛도 다른데 무슨 전통? 나름의 독특한 냉면으로서의 가치는 있겠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자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데, 요즘 냉면 그러면 누구나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떠올리지만 조선 말기까지만 하더라도 냉면 그러면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을 떠올렸다. 단지 레시피의 대가 끊겼을 뿐.

 

쓰다 보니 식도락계 오랜 논쟁인 탕수육 ‘부먹/찍먹’이 떠오른다. 즉, 덧없다. 애초에 탕수육은 주방의 유파에 따라 볶거나 부어서 만드는 음식이라서 덧없고, 바삭바삭한 고기 튀김을 먹고 싶다면 차라리 언제부턴가 사라진 메뉴인 ‘덴뿌라’가 부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덧없고, 아예 원조의 원조를 찾아 중국으로 가서 “탕수 쏘스 부어 먹으면 튀김 눅눅해지잖아요?” 따지면 그들은 “눅눅해지기 전에 다 먹으면 되는데 왜?” 답하니 덧없고.

어쩌면 이는 그저 한국 아저씨들의 슬픈 초상 아닌가 싶어,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