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알파고라도, 괜찮아

알파고 때문에, 왠지 좀 불편하다. 까닭 없이 언짢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왠지, 아 이건 진짜 좀 아니지 않나,, 못내 찜찜하다. 아니, 왜 그런 걸까. 나는 바둑을 두지도 않는데.

우선, 철학적 그리고 문화적 밑바탕에서 어떤 위협을 느끼는 듯싶다. 바둑이라는 클래식 보드게임을 즐기든 즐기지 않든, 바둑이 한국인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꽤 크다. 바둑은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이라느니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을 오롯이 다 담은 동아시아 철학 그 자체라느니 뭐 그런 거룩한 이야기는 바둑 즐기는 사람들끼리 나누라며 무시하더라도, 포석, 호구, 초읽기, 대마불사, 꽃놀이패, 승부수, 자충수 그리고 미생과 완생 등 일상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쓰는 바둑 용어만 봐도 우리는 어쨌든 바둑이라는 놀이의 문화권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럼, 바둑보다 먼저 기계에게 진,

체스는 어떨까?

체스 또한 그 문화권에서는 어떤 철학적 그리고 문화적 큰 의미를 가진 게임일 테니, 기계에게 패한 뒤 아마도 지금 우리와 비슷한 허탈감을 느꼈을 듯싶다.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체스 그랜드 마스터였음에도 딱하게도 1997년 IBM의 체스 컴퓨터 ‘딥 블루‘에게 패배한 자로만 기억되는, 러시아의 ‘가리 카스파로프‘는 미국 서평 잡지 ‘The New York Review of Books’에 게재한 을 통해  “컴퓨터는 체스보드 위에 놓인 각 말의 가치를 결정하고 수십억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한 뒤 다시 말의 가치를 재결정하는 작업을 반복할 뿐, 고대로부터 내려온 인간 정신을 상징하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자의식은 없다”고 말했다. 왠지 뒷맛이 쓴 말이다. 하지만 이어서 “사람과 달리 기계는 어떤 일을 할 때 문화적 편견이나 교리 같은 쓸데없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효과만을 따지는데, 그런 기계를 상대로 체스를 연습한 요즘 선수들도 그러하다. 어쨌든 체스 선수들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며 기계-체스의 효과만은 상당히 긍정했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리고,

기계와 함께 하는 체스

가리 카스파로프는 다음 세대의 체스를 설계했다. 기계는 계산이 빠르고 인간에겐 마음이 있으니, 둘을 합하면 될 일 아닌가.. 그래서 그는 인간과 기계가 협력하는,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마 이름을 딴 ‘켄타우로스’ 프로젝트를 기획해 지금도 그 룰에 따른 이른바 ‘Advanced Chess‘ 대회가 개최되고 있고, 인간과 기계가 서로 어울려 치열하게 경쟁한다. 체스는 인간의 패배 이후에도 망하지 않고 오히려 전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그랜드 마스터 수는 늘었고 체스의 인기는 여전하다.

가리 카스파로프는 자신의 역사적 패배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매우 긍정한다. “나의 패배를 위로하느라고 누군가 ‘자동차가 사람보다 빠른 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 말하던데, 그건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자동차는 사람이 더 빨리 달릴 수 있게끔 도와주지 않지만, 컴퓨터는 사람이 두는 체스의 질도 높여주고 있으니까.”

그래서, ‘지구인’

그의 말대로 체스는, 뭐랄까, 공평해졌다? 과거엔 그랜드 마스터를 많이 보유한 강국들이 폐쇄적으로 후진을 양성함으로써 마치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국제적 대결 구도를 그렸는데, 요즘은 그런 거 없다. 그랜드 마스터보다 더 강력해진 체스 프로그램을 통해 누구나 편하게 세계 최고 수준의 대국을 혼자서도 펼쳐 볼 수 있게 되어, 그랜드 마스터가 한 명도 없던 체스 약소국에서도 천재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게 되었다.

바둑도 그리 되면 어떨까. 언론의 호들갑에 의해 실제보다 과장된 감도 없잖아 많다만, 그간 바둑은 반상 위 전쟁터로서 한중일 세 나라의 삼국지를 펼쳤다. 절대적 강자였던 일본의 왕좌를 한국이 뺏고 이제 중국과 경쟁하고 있다. 이미 뺏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만,, 그런데, 이제 그런 게 뭔 의미겠나, 압도적인 인류 공동의 적이 등장했는데.

뭘 어떻게 하면 인류는 전쟁이라는 쓸데없는 짓을 포기할까, 답 없어 보이는 질문에 누가 답하길, “외계인이 등장하면 인류는 하나가 됩니다.” 그런 상황이다. 지구인은 단결해야. 그리고, 인생사 치열해 어록도 화려한 서봉수 9단이 툭 뱉었던 “판때기에 돌 놓는 게임”이란 말의 허무를 되새겨 본다. 가리 카스파로프가 말한 ‘문화적 편견이나 교리’에 대해서도 서 9단은 비슷한 말을 했다. “바둑에 신이 있다면 그의 눈엔 승부수니 기세니 하는 애매모호한 말은 전부 가소롭게 보일 것이다. 신의 눈에는 오로지 정수와 악수밖에 없다.” 탈신화란 일단 긍정하고 볼 일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알파고 은퇴?

알파고는 이제 바둑 안 하겠단다. 사실 계속할 까닭이 없긴 하다. 바둑 프로그램으로서 자기 할 일을 웬만큼 다 해냈다. 알파고 이전에는, 1969년에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그리고 게임 연구자였던 알버트 린지(Albert L. Zobrist) 박사가 ‘A model of visual organization for the game of GO‘ 논문을 통해 패턴 인식 방식의 바둑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2008년 최초로 몬테카를로 방법(Monte Carlo method)에 따른 바둑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단지 그 뿐이었다. 기계는 사람을 이길 수 없었고, 사람은 이를 당연한 일로 여겼다.

그러다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MCTS) 방식에 컨볼루션 신경망(CNN)과 강화 학습을 통한 딥 러닝 방식까지 총동원한 알파고가 나타나 결국 사람을 이겨버린 것이다. 바둑만은 못 이긴다 했는데, 이겼다. 혹시 의심할까 봐 1년 지나 한 번 더 이겼다. 그러니 이제 더 할 일이 없다. 애초에 바둑이 아니라 범용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게 목적이었으니, 그 과정의 일환인 작은 목표 하나 달성하고 다음 목표를 향하는 것.

버전 높이면서 성능과 효율을 대폭 개선해 바둑 프로그램으로서도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이뤘으니, 알파고는 바둑판을 떠나더라도 알파고가 아닌 다른 비슷한 방식의 AI 바둑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할 테니, 그럼 그 프로그램들과 어울려 함께 놀면 그만이다. 체스가 이미 그러고 있듯.

“알파고야, 이제 뭐 해?”

알파고 개발에 대해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는 “범용성을 추구하고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말한다. 바둑 잘 두는 AI가 목표는 아니었으니 원래 목표인 범용 AI 만들기에 집중하겠다는 말이다. 일단 지금까지는 아주 잘하고 있는 듯하니 축하하고 칭찬할 일이다. 그런데,

범용이면, 뭐든 다 하겠다는 거잖아, 모든 일을? 그렇다면 왠지 좀 무섭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바둑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떤 특정한 목표를 지정하고 그 목표에 관계된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므로, 범용이라 하더라도 각각의 일에 대해 따로 학습을 해야 하고, 이 학습의 성취와 저 학습의 성취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딥 러닝은 사람의 뇌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으로 실수와 학습을 반복하면서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기술이지만, 정말 사람처럼 그 모든 학습을 종합해 통합적으로 사고하진 않는다.

실수의 책임

그리고, 딥 러닝은 통계적으로 최선을 찾는다. 즉, 통계적으로 실수가 적은 선택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사람보다 실수를 확실히 적게 한다. 하지만 하긴 한다. 그러니 책임 문제 때문에라도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의료, 교통, 공공 부문, 즉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일에는 당장 투입할 수 없다. 인간에 비해 분명 실수 가능성은 적겠지만, 인간에게는 실수의 책임을 따질 수 있지만 기계의 책임은 정의가 애매하다.

그럼에도 사람보다 실수를 훨씬 더 적게 하니까 어서 투입해야 하지 않나? 그 논쟁이 지금도 아주 뜨겁다. 특히 자율주행 자동차에 탑재되는 AI에 대해서. 논쟁이란, 만약 AI가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면 이는 누구의 책임인가, 운전자? 자동차회사? 프로그래머? 아니면, 설마 AI? 이거, 정말정말 어려운 문제다. 그러니 알파고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기술의 우수성만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엔 그리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리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의 마음은 너무나 유약해서, 당장 바둑만 보더라도, 이겨서 상금을 벌겠다는 마음은 바둑을 하는 아주 큰 동기지만 불안과 초조를 일으켜 큰 실수를 낳기도 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야?’ 싶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긍정하게 된 말이 있다.

“운전이란 너무나 위험해서, 사람에게 맡길 만한 일이 아니다.”